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혹은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
- 하인리히 뵐.
"나는 비록 종이 한 묶음, 뽀족이 깎은 연필 한 통, 타자기 하나를 가지고 혼자서 글을 쓰고 있지만, 나 자신이 혼자라고 느낀적은 없고 뭔가에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다. 시간과 동시대성에 연결되고, 한 세대에 의해 체험되고 경험된 것에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이 책의 작가인 하인리히 뵐의 말인데 전후 폐허 더미 속에서 탄생한 그의 문학은 당시 경제적, 사회적 환경과 그것의 모순, 도덕적 결함 등을 무시할 수 없었다. 혼자서 외로이 펜을 들고 이러한 부조리와 맞서는 작가로서의 삶이 느껴진다.
이 소설도 사회적 인식에 대한 나름대로의 분석이요, 도전이다. 말하자면, 기득권을 향한 도전.
소설의 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주인공 '카타리나'는 우연히 은행강도에다 살인혐의까지 있는 '괴텐'이라는 젊은 남자와 연루가 된다. 카타리나가 괴텐이란 남자를 도망치게 도왔다는 것인데 그러나 카타리나는 결백하다. 그래서 이 결백을 증명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언론(특히 그 시대의 최고 신문사였던 "차이퉁지")에서는 빅이슈거리였던 이 괴텐이라는 젊은 남자와 매력적인 카타리나라는 젊은 여자에 대해 온갖 억측 기사들을 쏟아내고, 또한 그럴듯한 시나리오를 만들어내면서 주인공을 괴롭힌다. 신문에 보도되는 글자 하나하나가 카타리나에겐 칼이요, 바늘이다. 카타리나를 믿었던 주위 모든 사람들이 떠나간다. 사람들은 신문에 보도되는 내용만을 믿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마침내 해당 신문사는 카타리나의 엄마까지 모함하게 되고, 카타리나의 엄마는 지병이 악화되어 결국 죽고 만다. 참다 못한 카타리나는 해당 신문사 기자를 마침내 총으로 쏴 죽이게 되는데... 이 것이 이 소설의 주요 내용이다.
언론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물어볼 필요도 없다. 공정성과 객관성 그리고 정확성을 기본으로 하여 사람들의 알권리를 위해 다양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일 것이다. 그러나 소설에서의 언론과 지금 이 사회의 언론의 행태는 어떤가. 정치 권력과 결탁하여 진보와 보수로 나뉘고 하나의 사안을 두고 180도 다른 기사를 써대고 있다. 독자들은 어느 언론의 말을 믿고 살아야 하는가. 여기서 무슨 공정성과 객관성 그리고 정확성을 찾을 수 있을까. 한 마디로 금권(돈과 권력) 앞에 그들은 모두 무릎을 꿇었다. 인기에 영합에 판매 부수를 늘리려는 목적에 지나지 않고 정치 권력과 결탁해 그들의 보살핌을 받으려는 치졸한 속셈에 지나지 않는다.
소설은 카타리나라는 한 개인이 언론이라는 거대 권력앞에 어떻게 철저히 무너지고 파괴되어가는가를 보여 준다. 카타리는 그들에게 있어 놀이개감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카타리나라는 한 개인의 죄의 유무 등이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도 이미 카타리라는 한 여자는 언론이란 것에 의해 사망선고를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죽이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온 세상이 보는 앞에서 거의 난도질 해 버린다. 더욱이 칼과 총이 아닌 '펜'이라는 무기로. 미루어 짐작컨데 이런 경우 차라리 칼과 총으로 끝내는 것이 훨씬 간단하다. 하루하루 보도되는 기사는 그 뾰족한 펜으로 자신의 심장을 콕콕 찌르는듯 매일매일 죽는 심정일 것이다.
또한, 자기는 결백한 상황에서 그러한 보도 기사로 인해 가족과 친구, 친했던 사람들이 다 떠나가고(배신하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공공의 적이라 욕하는 상황을 맞는다면 그 하나의 개인은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노무현 전 대통령 처럼 그냥 나하나 죽고 말지라는 생각을 그 누구나 한 번쯤을 할 것이다. 물론 실행을 옮기느냐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결론은 이 펜이란 또 다른 권력, '언론'은 우리에게 평상시는 대부분 '꿀'이지만 언젠가는 치명적인 '독'이 되어 우리에게 차디찬 비수로 꽂힐 수도 있을 알아야만 한다. 내가 아니더라도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게 될 수도 있다.
옛 선인들 말이 정말 맞다. 펜은 칼과 총보다 더 무섭다. 시간을 두고 사람을 아주 철저히 괴멸시킨다.
소위 알권리라고 하는 것. 절대다수의 알권리라고 하는 것 그것 때문에 한 개인이 이렇게 철저히 몰락해도 되는 것인가. 견제장치가 필요하다. 이런 검증되지 않고 사실 알권리의 내용에도 부합되지도 않는 그런 무분별한 기사들은 금지 되어야 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책이 나온 1975년이나 지금이나 이러한 언론에 대한 견제장치는 딱히 없어보인다. 검찰, 법원 또는 행정기관에서 단속을 해야하지만 그들 역시 금권에 빌붙기는 매 한가지다.
카타리나는 절대 소설 속 인물이 아니다. 소설 역시 실화를 배경으로 쓰여 졌지만.. 카타리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요, 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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