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박노자 교수의 글을 읽고 '알고도 당한다'라는 말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링크> 봉기의 음악을 들어라!
주내용은 영국 '폭동'관련 언어 또는 단어를 잘 가려서 알맞게 사용해야 한다!인데요, 서두에 박교수가 기술했다시피 이 언어라는 것의 사용은 피억압자와 억압자 사이의 중요한 투쟁중의 하나입니다. 주로 억압자가 피억압자를 조종하고 유도하고 호도하고 기만하기 위해 사용하죠.
떠오르는 대표적인 문구하나가 바로 '노동시장의 경직성, 유연성'이라는 말입니다. 사실 이 말을 그냥 알기 쉽게 풀어쓴다면, '노동시장의 경직성'같은 경우는 '직원들을 자르기가 너무 힘들다'라는 말이 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라는 말은 반대로 '직원들을 자르기가 쉽다'라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왜 언론과 방송 등등에서는 이렇게 바로 이해되기 쉽고 쉬운말을 쓰지 않고 '경직성'이라든지, '유연성'이라든지 하는 선뜻 들어서는 바로 이해가 안되는 즉, 어느 정도는 학습이 필요한 단어를 골라 쓰는 걸까요? 단순히 말을 좀 줄일려고 그랬을까요? 아니면 배운 사람들의 어떤 현학적 심리때문에 그런 걸까요? 제가 볼땐 둘 다 100% 정답은 아닌것 같습니다. 오히려 앞서 말한 억압자와 피억압자 사이에서의 어떤 역학적인 연유가 있어 보입니다.
억압자는 지속적으로 권력과 돈 그리고 명예(지덜만의)를 유지키 위해 대중을 속여야만 합니다. 사실, 억업자가, 지배계급이 속속들이 그들의 내면을 다 들어내놓고 일을 추진한다면 어떻게 대중을 등쳐먹겠습니까? 그들은 어떻게든 사실을 속여야하고 호도해야만 합니다. 그 수단중 좋은 것이 바로 '언어'라는 것이죠. 무슨무슨 정책 등이 있을때 내용을 쉽게 풀어써주면 아주 좋겠지만 -이들도 이런 부분을 매우 잘알지만- 그들은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말을 어렵게 만듭니다. 백성이 다 알아서 좋을게 없다는 주의가 바로 그들입니다. 위에서 예로 들었듯이 직원을 자르기 어렵다, 쉽다라고 그냥 편하게 쓰면 될것을 그들은 노동시장이 너무 경직되어서 유연하게 할 필요가 있다라고 아주 어렵게 말합니다. 대학교육 이상을 받은 국민들이라도 경제학과나 그 관련학과 전공이 아닌 이상은 -특히, 이공계나 예술계통- 이 '경직'이나 '유연'이란 말을 경제기사나 경제레포트안에서 읽으면 바로바로 이해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기사나 레포트는 읽었지만 스스로 학습해서 정독하지 않으면 그냥 그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기사와 레포트가 즉, 그 정책들이 국민에게 혹은 그들 자신에게 좋은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분석되기전에 말입니다. 대중들은 아니, 서민들은 그 잘난 인간들이 하는 말과 언어를 하나하나 다 이해하기 위한 여력과 여유가 없습니다. 이것을 그들도 잘알고 있는 것이죠.
좀 더 나가서 이러한 현상들이 양과 질적으로 무한히 반복되면 결국 억압자의 의도대로 대중은 부지불식간에 움직여질수 밖에 없고 이러한 현상은 결국 선거때 그대로 '표심'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여기서 이 '표심'이란 말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보여지는데, 왜냐하면 이 표심이라는 것이 상당히 왜곡되어진다는데 그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표심', 말 그대로 국민들의 마음이 온전히 그대로 선거에서 나타나야 정상인데 위에서 예로든 현상들이 지속적으로 반복되어진다면 중첩된 오해의 지식으로 유권자들은 본인이 마음에 드는 당과 후보에게 표를 찍음으로써 결국은 자신에게 불리한 당과 후보에게 표가 간다는 시나리오가 되겠습니다. 그러면 결국은 또 나중에 시간이 흘러 그 당선인의 임기가 중반쯤 되었을때 그 후보들을 찍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한 마디씩 하죠. 배신을 때릴줄 몰랐다는 둥 그런 사람이었는지 몰랐다는 둥.. 맞습니다. 정말 그들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몰랐기에 당했던 것입니다.
이틀후면 8월 15일 광복절입니다. 박교수는 글에서 3.1 독립운동 얘기도 했습니다. 그는 글에서 영국 '폭동'을 폭동이란 단어로 표현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며 만일 우리나라의 3.1 독립운동이나 5.18 민주화운동도 입장에 따라서는 '소요'나 '폭동'이 될 수 있다 말합니다. 8.15롤 보시면 우리나라입장에서는 당연히! 절대적으로! 일제로 부터의 독립을 위한 처절한 운동이었지만, 당시 혹은 지금 일본 우익에게는 그냥 '소요'일 것입니다. 5.18 민주화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시민들에게는 그것이 독재를 깨기 위한 민주화 운동이었지만, 전두환/노태우 세력에게는 그냥 '폭동'이었을 겁니다. 그러니 무자비하게 진압을 했겠죠.
결론입니다. 만일 우리가 영국의 그 폭동을 그냥 폭동을 정의내려 인식한다면 그 폭동을 일으킨 사람들은 지금 우리 만큼이나 섭섭할겁니다. 무슨말이냐하면, 당시 3.1운동이나 5.18민주화운동을 두고 그들은 -영국이나 외국사람들 망라하여- 그 나라 언론에서 퍼나르는 기사를 그대로 읽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박교수 예시대로 '소요'나 '폭동'이란 단어를 취했을 가능성이 높겠지요. 특히 광주민주화운동은 아마도 '폭동'으로 보도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여집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우리나라 언론에서 -심지어 진보신문에서도- 영국 폭동을 그냥 폭동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과거에는 그러한 인식이 더 심했을 거라는 추측입니다(하지만 여전히 추측에 불과합니다).
아무튼, 우리의 3.1운동과 5.18민주화 운동을 만일 지금의 외국인들이 그냥 소요나 폭동으로 인식하거나 간주하고 있다면 우리가 섭섭해 하듯이, 우리 역시 영국인들의 폭동을 그냥 폭동으로 여기지 말고 좀 더 심도있게 관찰한 후 정의내릴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럼 왜 영국인들이 폭동을 일으켰는지 그 당위성, 어떤 이유 혹은 대의 등이 있는지 알아봐야 할 필요가 있는데 제가 보기엔 재미로 폭동?을 일으킨것 같지는 않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박교수글에 잘 나와 있어 토스합니다만, 결국은 억압자들이 피억압자들을 계속 핏박하니까 결국 그 피억압자들이 참다 못해 일으킨 것이 이른바 그 '폭동'이라고 보여집니다. 따라서 그들 나름대로는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것이죠. 지금까지 니덜이 내것을 부당한 방법으로 많이 가져갔으니 나는 지금 이렇게라도 내것을 챙기겠다! 뭐 이런 논리입니다. 물론 그 방법이 옳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반대로 무조건 폭동이란 단어만을 사용하여 그들을 폭도로 몰것도 아니란 것이죠. 다시 말하자면, 현상을 그저 피상적으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3.1운동과 5.18도 피상적으로만 본다면 오해하기 십상이니까요. 진실은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는 일제에 항거했고 독재정권에 항거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영국인들이 일으킨 그 폭동이라는 것에 심도있게 알아봐야만 합니다. 물론 대부분 인터넷에 답이 나와 있지만요.
언론에서는 하는 수 없이 그렇게 표현하더라도 적어도 우리자신, 개개인만큼은 다른 내용으로 인식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또 하나 있습니다. 지금 언론에서 떠드는 그 영국 폭동이 이대로만 간다면 남의 일이 아니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신자유주의 노선, 양극화 현상 그리고 이어지는 억압자와 피억압자간의 역학관계를 볼때 한국과 다른것이 무엇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