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 최현미 vs 쓰바사 권투 경기편 차라리 감동이었다.
양보할 수 없는 소녀 최현미.
포기할 수 없는 소녀 쓰바사.
두 소녀의 꿈을 향한 아름다운 전투.
양보할 수 없다는 것과 포기할 수 없다는 것.
결국
그것은
같은 말.
그리고 아름다운 전투라고 하는
어울리지 않는 말.
세상에 사연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의 사연과 그리고 너의 사연.
나의 그 지독한 사연과 너의 그 처절한 사연.
사연과 사연이 맞부딪히는 곳.
그것이 곧 이 세상,
우리가 사는 지구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사연들을 다 알길이 없다.
다 안다면 어떻게 될까?
뭔가 조금이라도 바뀔까?
세상 사람들이 좀 봐주고 그럴까?
허나 그럴수 없다.
다 알기엔 세상이 너무 급박하고
살아가지 조차 애달프다.
사연이 더 처절하면 할수록,
지독하면 할수록,
우리의 꿈은 더 비대해져 가고,
더 양보할 수 없게 되고,
더 포기할 수 없게 된다.
나는 너를 이기므로 내 사연을 떨쳐 버려야 하고,
너는 나를 이기므로 그 사연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므로 너와 나의 목적은 똑 같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
그것은 태어났기에
헤어나기 위한 몸부림.
하지만,
결국
서로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우리.
서로 안을수 밖에 없는 우리.
서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우리.
그래서 다가가려 하지만,
현실은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게끔 만든다.
스스로를 합리화 하면서.
그래서 하는 우리의 최선의 선택이란,
"그래 그럴바에야 우리 아름다운 싸움을 하기로 하자".
그래서 태어난 말이 바로
페어플레이.
야박한 우리의 인생.
헌데 원래 사는 것이 그런 것이란다.
세상을 산다는 것이.
가슴과 머리가 다르게 움직이는 것을 강요하는
이 세상을 산다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이라고 한다.
아닌걸 뻔히 알면서도
살아야만 하는
살아남아야만 하는
그런 것.
신이 원래 그렇게 만들었다?
이런 말
이젠
지겹다.
한편,
KBS 개콘에서는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외친다.
MBC 무한도전에서는 둘의 승부의 결과를 보여주지 않았다.
개콘에서는 이등이나 삼등도 기억해 달라 말하는 것이고,
무한도전에서는 누가 이기고 졌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말하는 것이다.
이 둘의 공통점.
일등만이 다가 아니라는 것.
일등만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
허나 일등 지상주의에 빠져 있는 우리.
일등 지상주의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만일, 철학적 영역에서 인간이 정말 적자생존, 약육강식, 그렇게 밖에 정말 살 수 없는 존재들 이라면.
그런 측면에서 (굳이) 본다면.
그리하여 내 생각을 정확히 말한다면,
"세상의 왜곡은 일등하는 자들의 욕심 때문이 아니라,
더 가질려고 하는 탐욕에서 비롯된다"
<손석희의 시전집중-쓰바사 선수 인터뷰 전문 목록 스크린 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