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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리뷰] 영화 The Woman.


The Woman



이 세상의 모든 동물들 중에서 오로지 자기의 기분, 흥미 그리고 유희를 위해 같은 동물을 괴롭히는 동물은 인간뿐이다. 그 아무리 포악한 맹수라 할지라도 자신의 먹이활동 그 이상은 해치지 않는다. 인간이란 동물은 심지어 같은 종족인 인간마저 괴롭히고 가지고 놀고 살육하니 더 이상 말이 필요없다. 
소위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는 이성이라는 것,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 이것이 부디 좋은쪽으로만 쓰일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세상에는 공짜가 없듯이 이 이성은 철저하게 그리고 아주 적당하게 때때로 나쁜쪽으로 잘 사용되고 있다. 

한 때 고민에 휩싸였던적이 있는 것은 인간같지도 않은 인간을 우리가 같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인간으로써 대우를 해주어야 하는 것이었다. 사실 지금도 뾰족한 답은 찾지 못했다. 예를 들어 나이 70인 할아버지가 있다. 헌데 이 할아버지는 10대 소녀를 강제로 탐하고 갖은 악행과 집안에서 폭력을 일삼는다. 직접 죽이지 않았을 뿐이지 이 할아버지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이 때, 우리는 이 할아버지를 할아버지로써 대우 해야할까? 그러니까 인간이므로 인간으로써 대우을 해야 하는걸까? 말하자면, 나이가 아무리 많고 적든 간에 인간으로 태어났으니까 인간같지도 않은 온갖 악행을 저지른 인간을 우리는 인간으로써 대우를 해야 옳은 걸까? 만일 대우를 해야 한다면 어떻게, 어떤식으로 적절히 대우를 해야하는 걸까? 단순히 '인권'으로서 그 답을 찾기엔 뭔가가 깨름칙하다.


사이코패스에 대하여. 
사이코패스 인간의 전형적인 특징은 타자(사람, 사물, 동물을 다 포함함)에 대한 '감정이입' 이 전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타자에 대해 감정이입이 되지 않기에 겉으로 보기엔 무난한 인간처럼 보인다. 사이코 패스 인간들 중에 소위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왜냐하면, 타자에 대해 감정이입되는 순간 그것을 더 생각해야 하고 더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이른바 그 성공은 더뎌진다.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 장미란 선수가 마지막 경기를 다하고 역기에 손키스를 하는 장면이 나왔다. 개인적으로 가슴이 찡했다. 나꼼수에서 김어준도 그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나 역시 그랬다. '아 장미란은 역기인 사물한테도 인간적인 감정을 부여하는 구나'....  사물인 역기를 장미란은 느끼고 있었다. 어떤 사람(선수)에게는 그저 금메달을 위한 수단과 도구에 불과했던 그 역기가 적어도 장미란한테는 친구이자 동료였던 것이다. 사람은 정성을 쏟는 그 무엇이든 자기의 분신이 된다. 요건 내말이다^^

헌데 이 '감정이입'이라는 거 정말 아무나 되는거 아니다. 이건 다분히 능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타자를 보고 감동하고 눈물흘리는 것이 그저 하고싶다고 해서 되는 일인가. 아니다. 예를 들어, 영화한편에, 좋은 노래에, 꽃 한송이에, 잔잔한 호수에, 살랑 부는 실바람에, 푸른 바다와 파란 하늘에 감동하고 코끝이 찡해오는 것을 느끼는 것은 하고 싶다고 되는게 아니고 그러한 능력을 선천적으로 타고 났기 때문이다. 생물학적인 특성에 가깝다는 얘기이다. 어떤 사람은 되는데 어떤 사람은 안되는 것, 누가 옳고 그르다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의 문제라는 걸 다시 강조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것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기르면 되니까.

신장시키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인문학을 가까이 하는 것이다. 인문학은 타자를 생각하게 하고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철학자 강신주는 인문학을 '직구'의 승부라고 한다. 솔직해 져야 한다는 것이다. 가감없이!  강신주 박사는 다시 말했다.  '시'가 잘 읽히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텐데, 왜 그런지 아냐고. 이유는, 자기 자신이 시인처럼 그러한 경험을 해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시인의 그 마음을 잘 알겠냐고. 자기가 처절하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체험을 해야 한다고. 사랑한번 못해보고서 어떻게 '김춘수의 꽃'이나 '황지우의 기다리는 동안' 같은 시를 시인과 같이 느끼고 공감할 수 있겠냐고.
인문학은 타자에 대해 감정이입을 하는 학문이다.
 
장미란의 대척점에 있는 사람들이 소위 대기업 총수들 그리고 권력자들이다(이 권력자들중에 현재 적당한 사람 한 사람이 있는데 굳이 쓰진 않겠다^^). 이건 내 얘기가 아니다. 신경정신과학에서 그렇게 말한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경찰에 잡히는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을 삼류 사이코패스들로 취급한다. 하급이란 얘기다. 진짜 상급의 사이코패스들은 잡히지도 않을 뿐더러(잡을수 있는 명목도 없다 사실은) 오히려 떵떵거리며 잘살아 간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렇게 타자에 최대한 감정이입을 하지 않았기에 타자를 짓밟고 억누르고 거기까지 오른것이다. 최대한 타자에 대해 감정이입을 덜하는 것, 그것이 그들의 성공비결 중 하나다. 물론 모든 대기업총수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사이코패스형 범죄를 그나마 줄일 방법은 인문학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아래 글을 읽어보자.

"사형제로는 결코 강력범죄를 근절할 수 없다. 사형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범인이 범행 직전에 자신이 검거될 경우 어떤 처벌을 받을지를 고려해 극단적인 행동을 자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살인자나 흉악범죄자의 상당수는 충동적이거나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다. 심지어 일부는 본인이 검거돼 처벌받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피해자의 증언을 막기 위해 범인이 더욱 흉악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토마스 코즐로프스키 주한 EU대표부 대사)

이건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얘기한 것이다. 토마스 대사는 분명 진화심리학을 공부했을 것이다.
소위 '이득'과 '대가'의 관계가 있다. 합리적으로 선택을 하는 인간이라면 내가 어떤 대가를 치뤘을때의 이득을 계산해 본 후 합당하면 그것을 결행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인간의 뇌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진화심리학자들의 주장이다. 그들은 심지어 현재 인간의 뇌는 1만년 전 석기시대의 뇌상태로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진화를 하려면 그 개체의 수명(인간으로 치면 약 70-80년) 기준으로 그 주변환경이 적어도 수 만 년은 거의 변화가 없어야 하는데 그 1만년 동안 인간사회는 너무나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인간의 뇌는 1만년 전의 뇌이며 그래서 1만년전 뇌로 21세기를 살고 있기 때문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인간은 제대로 주변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살인을 두고 다시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만일 한 인간이, 내가 죽이면 나도 죽을 것이다라는 것을 머릿속에 제대로만 인식하고 있다면 적어도 지금 만큼은 살인사건이 덜 일어날것이다(진화심리학자들 주장). 하지만 인간의 뇌는 진화가 아직 덜 되었기에 그러한 순간적인 상황하에서는 그 대가와 이득의 관계를 합리적으로 계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아주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살인사건들을 보면 충동적이고 우발적인 케이스가 많다. 물론 계획적인 살인도 많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살인이나 각종 성범죄를 100% 막을 수는 없다. 그런 완벽한 인간은 멸종했고 그리고 어쩌면 지금도 진화중이므로(추측).
하지만, 인문학의 활성화로 최소한 줄일수는 있다. 이것이 우리가 할일이다. 막을 수는 없지만 줄일수는 있다는 것. 한 발 더 나아가자면 인문학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대통령을 뽑는 것 이것이 바로 각종 묻지마 살인과 성범죄를 줄이는 비결이다.    


이 영화를 보면 사이코패스들이 나오는데 인간이 어떻게 저럴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도 안되고 상상도 안되고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그 현상을 풀이할 수 있는 도구 중 하나가 바로 '진화심리학'이 아닐까 한다. 바로 인간본성에로의 접근이다.

영화가 좀 잔인하긴 하지만, 영화는 말한다. 문명사회가 더 잔인한지 아니면 식인사회가 더 잔인한지.
나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두 개의 '악마를 보았다' 하지만, 그 두 개가 진정 악마인지 그냥 우리의 본성인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