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많은 밤이면
김용택
생각이 많은 밤이면
뒤척이고 뒤척이다
그만 깜빡 속은 것 같은 잠이 들었다가도
된서리가 치는지
감잎이 뚝 떨어지는 소리에 그만
들었던 잠이 번쩍 깨지는 것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생각에 매달리어
또
그 생각에 매달리기 싫어서
일어나 앉아 머리맡에 새어든 달빛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는
더듬더듬 불을 켜보지만
그 생각들이 달아나기는커녕
새로운 생각들이 더 보태지는 것이다
그런 밤이 가고
풀벌레 우는 새하얀 아침이 오면
마당 한구석 하얀 서리 속에 산국이 노랗게 피어
향기가 더 짙고
집 앞 아름드리 느티나무 아래 떨어진 잎들은
천근이나 만근이나 된 듯 흰 서리에 속이 젖어
땅에 착 달라붙어 있는 것이다
마루에 나와 우두커니 서서 이상없이 어제와 똑같이 흐르는
강물이며 그냥 그대로 다 있는 텃밭에 김장 배추라든가
알몸이 파랗게 거의 다 솟은 무라든가
배추밭 구석진 곳에 심어져 쪽 고르게 자란 쪽파에 내린 흰 서리라든가
하얀 서리밭을 걸어오시는 나이가 드실 대로 다 드신 이웃 집 큰아 버님의
허리 굽은 걸음이라든가
앞산 산속 참나무 밑이 헤싱헤싱해 보이는 것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개운해지고
텅 빈 마음 안에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또렷이 보이는 것이다
그랬었구나, 그랬었구나 까닭도 없이 고개가 끄덕여지고
그런 것들이,
그러한 것들이
투명한 유리알 저쪽처럼 손에 잡힐 듯 환하게 보이고
마음에 와 그림같이 잠기는 것이다
카테고리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