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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년] 40년 후의 일기를 꺼내어.



'당시에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너무 의식하고 살았다. 본인의 성공과 행복의 기준이 온전히 다른 사람들 손에 있었으니 말이다. 성공까지는 모르겠으나 행복마저도 다른 사람들이 '그래 너 이제부터 행복해'라고 인정해야(물론 이것 역시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지만) 비로소 자기가 행복하게 되는 그런 지경이었다. 오로지 돈,돈 오로지 성공, 성공의 시절이었다. 물론 그 시절, 생존이 다급했음은 인정한다.

학생들은 좋은 학교 좋은 대학이 전부였다. 예체능인문 과목들은 필수에서 선택으로 그리고 선택에서 필요없는 과목으로 점점 사장되어 갔다. 학생들의 체격은 커지는데 체력은 떨어지는 웃지못할 기현상에도 사람들은 별 반응이 없었고 도리어 체육시간에 체육을 하면 욕을 먹었다. 
그리하여 들어간 좋은 대학. 학생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좋은 직장을 얻어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좋은 직장을 얻는 다는 것은 생존의 안전성과 그 연장성을 높여 주기 때문에 뭐라할 만한 사안은 못된다. 하지만!

하지만, 그렇게 해서 길러진 학생들이 자아를 미처 계발하지 못하고 비교적 똑똑한 머리만을 지닌체 기업에서 학계에서 그리고 예술계에서 경제계에서 정계에서 벌인 일들이란..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일들이었다. 권력을 사유화하여 불공정, 부정을 습관처럼 일삼았다. 생활 그 자체였다.
가끔 그속에서도 지혜로움을 가진 사람들도 다수 있었으나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역사의식이 있었다거나 정의로웠다거나 일반상식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니 도리어 그 반대인 경우가 허다 했다.
 
한 마디로 잘 못을 해도 잘 못한 것인지 모르는 사회가 당시 한국사회였다. 다시 말하자면, 자기가 잘못한 것을 알고서 부정하는 그러한 인지적 사태가 아니라, 자기가 잘못한 것인지조차 모르는 그러한 몰인지적 사태였던 것이다.
도리어 그들은 말했다. 걸려서 재수가 없었다느니, 내가 한 일은 저 사람이 한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느니, 평소에 내가 공을 많이 세웠으니 지금 한일은 묻힐 수 있다느니..
그렇다. 당시는 도덕성 말살의 시기였다. 그 도덕성 말살이 평준화 되어 습관화 되어 버린 뭐랄까.. 더이상 문자로 표현도 잘 안되는 그러한 허덕임의 시절이었다..'


- 2050년에서 지금을 바라보고 쓴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