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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춤-=조정래.



허수아비춤

조정래. 

각설하고, 
'허수아비춤'은 작가 조정래가 마음먹고 쓴 재벌고발 소설이다. 재벌중에서도 내가 보기엔 삼성을 정확하게 고발했다. 그리고 마치 김용철 변호사가 쓴 '삼성을 생각한다'의 소설판 같다. 
소설과 실제를 견주어 몇 가지를 비교를 해 보았다. 
소설속 등장하는 '일광그룹'은 삼성을 의미한다. 또 남회장으로 불리우는 회장은 이건희 회장으로 보이고, 이 남회장의 지시로 만든 '문화개혁센터'는 삼성의 구조본(구조조정본부)을 의미한다. 본  조직을 이끄는 소설속 일인자 윤성훈은 이학수를, 이인자 박재우는 김인주(재무팀)를 의미하는 것 같다. 소설에는 삼인자인 강기준도 등장하는데 이 캐릭터는 아직 실제에서 찾지 못했다. 헌데 그 대신 김용철 변호사를 대신할 인물을 소설속에서 찾았다. 그는 검사 출신 신태하라는 인물로 일광그룹으로 스카웃 되어 전현직 검사들의 로비를 맡는다. 이외에도 일광그룹에서는 정보통 김동석 국장 등을 영입한다. 
또한 소설에서는 삼성애버랜드 이재용 불법승계 관련 재판 내용도 나온다. 관련하여 실제 인물인 한성대 김상조 교수 얘기도 나온다. 그는 소설속에서는 허민이란 교수로 바뀌어 있다. 김상조 교수가 현재 이끄는 '경제개혁연대'는 소설속에서는 '경제민주화실천연대'로 나오고, 소설속 허민교수는 일광그룹에 대한 비판적인 글을 썼다 대학 재임용에서 탈락, 밥벌이 걱정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실제 인물인 김상조 교수는 현실에서 아직 그런 일을 겪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가 아니어도 생각나는 한 인물이 있다. 그는 2009년 8월 중앙대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한 진중권이다. 작가는 이 내용을 소설속에서 약간 mix한 것으로 보인다. 위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작가는 아예 작정을 쓴 듯하다. 물론 위 내용은 모두, 100% 내 느낌일 뿐이다. 

허수아비춤은 작가 조정래의 장편 사설 같다. 소설이 아니라 논리적 주장을 읽는 느낌이랄까. 기실 소설이라 함은 각 인물, 배경, 사건 등으로 작가의 의도(하고 싶은 말)나 심정 등을 나타내게 마련인데, 이 책은 작가가 그냥 직접 얘기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이것은 읽는 사람에 따라 개인차가 있을 것이다. 
특히 책 235쪽에 있는 내용을 보면 그렇다. 이 문장을 보면 작가가 왜 이 소설을 썼는지도 알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비인간적인 불의와 반사회적인 부정이 끝없이 저질러지고 있다. 그런 그른 것들을 보고도 아무런 분노나 증오도 안 느낀다면 그것이 옳은 것인가. 더구나 지식인들이라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 마땅히 그 잘못을 바로 잡으려는 분노와 증오를 느껴야 한다. (중략) 지식인으로서 현실의 부당함과 역사의 처절함에 대해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를 가슴에 품고 있지 않다면 그건 지식인일 수 없다. 더구나 작가로서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가 가슴에 담겨 있지 않다면 그는 작가일 수 없다. 
80년대 그때에 큰 자극을 받았던 어떤 작가의 글이었다"
여기서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첫째, 작가 조정래는 어떻게든 위의 말을 책에서 하고 싶었던 듯 하다. 소설 내용에 이 내용이 왜 들어가야 하는지 나로서는 생뚱맞다. 마치 억지로 끼워 넣어 느낌. 하지만 작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을 독자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었던 듯 하다. 
둘째, 작가가 말한 '지식인'이란 누구이며 또 무엇인가? 누구를 지식인이라고 불러야 하며 또는 불려져야 하는가? 그리고 그 기준은?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적인 말, '자발적 복종'. 
문화개혁센터(구조본)을 이끄는 소설속 윤성훈은 허민교수 등이 이끄는 경제민주화실천연대가 영 못 마땅하다. 그래서 이것들을 어떻게 처치 할까 박재우, 강기준에게 한 마디 건네는데, 박재우는 대뜸 대중들의 '자발적 복종'때문에 그들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니 걱정할 것 없다고 잘라 말한다. 윤성훈은 놀라며 자발적 복종? 하면서 되 묻는데.. 
여기서 말하는 자발적 복종이란 이것이다. 
책 416쪽을 줄이면서 각색하여,
'세상 사람들 모두가 더욱 잘살기를 바라고 그래서 기업이 잘되어야 우릭 잘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러면 기업에 대한 법적 조처는 관대하게 생각하게 되며... 이것은 결국 자기 자신들의 이기와 사치를 위한 것이며.. 기회주의이며.. 그래서 이것들이 없어지지 않는 한 대중은 시민단체들의 선동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지금의 대중에게 재물욕이 있는한 그 대중은 우리(일광)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될 것이다' 
이는 내가 볼 때 (현재의)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두 가지 마음과 통하는 것 같다. 미리 말하지만 이 말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한 가지 마음은 정의로운 마음이다. 즉,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여 적어도 욕이라도 한 마디 내 뱉어 보는 마음이다. 
그러나 다른 한 가지 마음은 그러한 기득권 세력안으로 편입되고 싶은 마음이다. 어느 정도?는 타협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마음이다. 내가 농담삼아 4대강 물길이 우리집 앞으로 난다면 나는 찬성이다라고 말하곤 했는데, 말하자면 '반님비(anti-nimby)'적인 현상 그것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가 지금 동시에 추구되고 있다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이의 해결책으로서 '시민단체'의 활성화를 대안으로 주장하고 있다. 프랑스(6천만), 독일(8천만)은  5만개의 시민단체를 운영하여 각종 감시를 진행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200여 개 정도라고 한다(생명력 있게 활동하는 단체만). 물론 민주주의 역사가 짧은 탓도 있다고 말하면서. 
우리 스스로 관리감독하는 것만이 '경제민주화'를 이루어 나가는 데 최선의 길이라 작가는 말한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화된 힘!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 생각난다. 
끝으로 리뷰를 적다 아래 기사를 봤다. 
여전히 '악'은 진행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