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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과 전체의 행복 사이.


개인과 전체의 행복 사이. 
제목을 짓나라 진땀을 뺐습니다. 도무지 적당한 제목이 생각나지 않아서..
그러다가 그냥 심플하게 적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래에 얘기할 제 고민이 바로 '개인'과 '전체'에 같이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기사를 보셨겠지만 최윤희씨 부부가 동반자살을 했습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정황 내용은 생략합니다. 
아래는 최윤희씨 유서 전문이라 합니다. 

떠나는 글…

저희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2년전부터 여기저기 몸에서 경계경보가 울렸습니다. 
능력에 비해서 너무 많은 일을 하다보니 밧데리가 방전된거래요. 
2년 동안 입원 퇴원을 반복하면서 많이 지쳤습니다.
그래도 감사하고 희망을 붙잡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추석 전주 폐에 물이 찼다는 의사의 선고.
숨쉬기가 힘들어 응급실에 실렸고 또 한 번의 절망적인 선고. 
그리고 또다시 이번엔 심장에 이상이 생겼어요. 
더이상 입원에서 링거 주렁주렁 매달고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혼자 떠나려고 해남 땅끝마을가서 수면제를 먹었는데 
남편이 119신고, 추적해서 찾아왔습니다. 
저는 통증이 너무 심해서 견딜수가 없고 남편은 그런 
저를 혼자 보낼수는 없고… 그래서 동반 떠남을 하게 되었습니다. 
호텔에는 정말 죄송합니다. 용서 또 용서를 구합니다. 
너무 착한 남편, 미안하고 또 미안할 뿐입니다. 
그동안 저를 신뢰해 주고 사랑해주신 많은 분들께 
죄송 또 죄송합니다. 그러나 700가지 통증에 시달려본 
분이라면 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해주시리라 생각합니다.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2010. 10. 7

봉투 뒷면에 쓴 글

완전 건장한 남편은 저 때문에 동반여행을 떠납니다.
평생을 진실했고, 준수했고 성실했던 최고의 남편.
정말 미안하고 고마워요!!

아침프로에 나와서 신랄하게 얘기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말을 참 시원시원하게 잘 하셨죠.  
왜 그랬어야 했는지 묻지 않을랍니다. 그 질문 전에 '오죽했으면'이란 생각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혹시 '앙드레 고르'라는 프랑스 철학자를 아시는 지요? 최근에 저는 이 분이 쓴 '에콜로지카'라는 책을 읽고 이 분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책 내용은 정말 좋았습니다. 강춥니다! 제가 이 책 내용을 100% 이해할 수 있었다면 얼나나 좋았을까 하고 몇 번이나 생각했습니다. 

이분 역시 아내와 동반자살을 합니다. 2007년. 최근의 일입니다. 불치병에 걸린 아내를 20여 년간 돌보아 오다 결국 같이 떠납니다(향년 84세).  
아래는 유서는 아니지만 그가 그의 아내에게 쓴 편지의 내용이라 합니다. 책으로 있습니다. 'D에게 보낸 편지'라고. 

당신은 이제 막 여든 두 살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요즘 들어 나는 당신과 또다시 사랑에 빠졌습니다. 내 가슴 깊은 곳에 다시금 애타는 빈자리가 생겼습니다.  내 몸을 꼭 안아주는 당신 몸의 온기만이 채울 수 있는 빈자리입니다. 밤이 되면 가끔 텅 빈 길에서, 황량한 풍경 속에서, 관을 따라 걷고 있는 한 남자의 실루엣을 봅니다. 내가 그 남자입니다. 관 속에 누워 떠나는 것은 당신입니다. 당신을 화장하는 곳에 나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의 재가 든 납골함을 받아들지 않을 겁니다. 캐슬린 페리어의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세상은 텅 비었고, 나는 더 살지 않으려네.
그러나 나는 잠에서 깨어납니다. 당신의 숨소리를 살피고, 손으로 당신을 쓰다듬어 봅니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하자고.

사연이 정말 절절합니다. 
좀 심하게 말해서 이혼을 밥먹듯 하는 이 시대에 어떻게 하면 이런 사랑을 다 늙어서 까지 고이 간직할 수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강풀의 만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입니다. 아마 읽어 보신 분들도 꽤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워낙 유명하니까. 저는 최근에 봤지만.. 
제가 보고 몇 분께 그 책을 선물했는데 다들 좋았다고 말씀 하시더군요. 

책 내용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자살을 결행합니다. 그의 아내와 함께. 정말 '결행'이란 단어의 뜻이 어울릴 정도로 그 할아버지는 확고 했습니다. 수년간 돌보아 오던 치매에 걸린 아내가 위암이 걸리자 장군봉 할아버지란 분은 결국 아내와 같이 세상을 떠나기로 결심을 합니다. 그리곤 결행을 합니다. 죽는 것 보다도 혼자되는 것이 더 두렵고 무섭다고 하시면서. 

3가지 사연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개인(부부)의 행복을 찾아 떠났다는 것입니다. 최윤희씨 부부도, 앙드레고르 부부도, 장군봉 할아버지 부부도. 이는 픽션과 논픽션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 의미가 중요하기에. 

우리는 지금까지 배우기를 자살은 어떠한 형태로든 해서는 안되고 정당성이 없으며 어떤 경우에는 -특정 종교에서는- '죄악'이라고 까지 얘기를 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산다는 것은 흔히 '행복해 지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더불어 행복할 수만 있다면 물질적 풍요나 다른 어떤 요소는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고도 말들을 하죠. 
그렇다면 궁금합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개인이 시행하는 자살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일단 자살이란 그 자체는 사회 전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은 분명한 듯 보입니다. 베르테르 효과라는 말을 굳이 쓸 필요도 없이 사회 파급력이 큽니다.   
다시 묻습니다. 
개인은 무조건 자신의 행복('자살')을 포기해야만 하는 걸까요? 전체를 위해서? 
아니면 전체의 행복이기 전에 개인의 행복이 먼저니까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맞는 걸까요? 
위 세 가지 경우에  해당하는 분들에게 만일 사회가 자살은 무조건 안되는 것이니까 그래서는 절대안된다, 참아라, 견뎌라 라고 강요한다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제가 볼땐 남은 그분들은 정말 불행해질 것 같은데.. 
헌법에서 보장하는 '행복추구권'은 개인을 위한 건가요? 아니면 사회전체를 위한 건가요? 그것도 아니면 두 개가 적절히 mix된 어떤 것인가요? 
관련하여 민주사회에서 개인의 책임과 한계는 어디까지 인가요? 법적인 부분만 감당하면 되는 건가요? 아니면 이러한 관습, 일반상식, 미풍양속 등을 일일이 다 챙겨야 맞는 걸까요?  
그냥 한 번 생각을 해 봤습니다. 심각한 건 아닙니다. 
내가 만일 죽어야 행복할 것 같은 그런 입장이 된다면, 나는 그때 어떤 결정을 해야 옳을까? 라구요.   
나 보다 사회 전체를 먼저 생각하는 분들에게 이런 일이 닥친다면 정말 진퇴양난이 아니겠습니까. 이를테면 세상의 균형을 위하여 일생을 바치고, 그러한 균형잡힌 세상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그런 분들에게 말입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