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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와 [정기준]의 토론과 [덕만]과 [미실]의 토론.



이도(세종)와 정기준의 토론과 덕만과 미실의 토론.


뿌리깊은 나무가 지난주 끝이 났다. 마지막회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이도(세종)와 정기준의 짧은 토론이었다. 이 토론을 보고 들으면서 교차되는 다른 드라마의 장면 하나. 그것은 바로 선덕여왕의 '덕만과 미실의 토론'이었다.

우선 이도와 정기준의 토론을 살펴보자.
정기준은 이도에게 말한다.
"당신의 글자는 위정자와 지배층에 그렇게 이용될지도 모른다. 무릇 백성은 어리석어 보이나 지혜로써 속일 수 없다 했다. 허나 그 말은 어쩌면 어리석기 때문에 속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지혜가 없는 산이나 바위를 속일 수 없는 것처럼... 헌데 너의 글자로 지혜를 갖게 된 백성은 속게 될 것이다. 더 많이 속게 되고 이용당하게 될 것이야.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개새끼처럼".
이 말을 들은 이도는 어렵사리 이렇게 답한다.
"그들은 그들의 지혜로 지혜를 모색해 갈 것이다. 그리고 매번 싸우고 또 싸우려 할 것이다. 어떤 때는 이기고 어떨 때는 속기도 하고...지더라도 괜찮다. 수많은 왕족과 지배층이 명멸했으나, 백성들은 이땅에서 수만년 동안 살아왔으니까...또 싸우면 되니까".
그러면서 다시 말을 잇는다.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헌데 이제는 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야. 여기가 이렇게 아픈데, 그것이 어떻게 사랑이 아닐 수가 있겠느냐. 고맙구나 정기준"

한편, 덕만과 미실의 토론으로 들어가 보자.
덕만이 신권을 포기하고 첨성대를 비롯한 천문기상관측 정보를 백성에게 공개하겠다고 하자 미실은 그러한 덕만의 행위를 비웃으며 충고를 하기 시작한다.
미실은 종적인 측면과 횡적인 측면에서 구분하고 종적인 측면은 세 단계 이상의 계층이(다른 편), 횡적인 측면에선 지배자(미실과 덕만)와 피지배자(백성)가 존재(같은 편)한다고 말한다. 만일 덕만이 신권을 포기한다면 즉, 신권을 통한 환상정치(나는 이 환상정치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747이 생각났다)를 포기한다면 지배자는 피지배자를 지배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말한다. 백성들을 많이 알게 해서는 안된다고. 백성들은 한 개주면 두 개 달라고 말하고, 두 개 주면 좀 더 달라고 하는 족속들이라고. 모르는 것이 아예 그들에게도 편안것이라고 까지 말한다.
그러자 덕만은 환상이 아니라 진실을 가지고 통치할 것이며, 그들에게 환상이 아니라 희망을 줄 것이라고 말한다.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해서 언제 씨를 뿌리고, 물을 대고 거둘 수 있는지 알게 되면 그들은 배부르고 따뜻하게 멀고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환상보다는 희망을 원하는 사람들을 모아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한다.

이 두 토론의 결론은 무엇일까?
내가 보기엔
'사랑'이다.
먼저 정기준과 미실의 말이 100% 틀린 것은 아니라고 본다. 분명 일리는 있다. 정기준의 말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어리석은 백성에게는 속일수가 없다. 뭘 알아야 설명을 해도 한다.
그리고 미실의 말처럼 우리네 백성들 또한 그러한 과정을 무시한 체 오로지 결과론적으로만 몇 개 더달라 주문을 하기도 한다. 떼를 쓰면서..

하지만 틀렸다. 정기준과 미실은 틀렸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백성들을 향한 '사랑'이 없다. 백성들을 다스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사랑'이 없으면 그 조직, 그 사회, 그 국가의 앞날은 그냥 뻔하다. 아버지가 그리고 어머니가 자식이 그들보다 더 똑똑해 질까봐 가르치는 것을 포기하려 들면 그것이 부모인가.

북한을 보라.
철저하게 정기준과 미실이다. 정보를 제한하고 있고 신권(우상화)통치를 하고 있다. 북한의 지배계급에는 북한주민들에 대한 '사랑'이 없다. 그들이 2012년 강성대국을 운운하는 것은 -물론 되지도 않겠지만- 그들만의 리그이고 단지 그들의 권력을 유지시키기위한 목표, 목적에 불과하다. 내 생각이지만 그들은 지금 그들의 이상에 갇혀 있다.

남한도 별반 다르지가 않다.
현재 정보를 통제하고 있고, 소통을 막고 있고 미실의 말처럼 국민들은 다 몰라도 된다는 식으로 통치하고 있다. 2008년 쇠고기 사태나 한미FTA의 경우만 봐도 잘알수 있다. 잘 모르면 그냥 따라오라는 식이니까.

이것이 내년에 괜찮은 진보정권이 들어서야 할 이유다.
뿌리깊은 나무의 세종 '이도'에서 노무현 전대통령을 보았다라는 사람들이 많은데, 
내가 작년에 봉화마을에 갔을 때 논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사람사는 세상'
사람들이 자기 뜻을 잘 펼치고 잘 사는 세상. 아마도 이도와 노무현이 꿈꾼 세상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자유로워야 한다. 그리고 국민은 사랑을 받아야 할 존재들이다.
비록 정기준의 말처럼 그리고 미실의 말처럼 그러한 부작용이 다소 있을지언정 그 안에서 우리는 희망을 찾아야 한다.
헤겔이 비록, 역사속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역사속에서 아무 것도 배울 수 없다는 것이다라고 얘기는 했지만, 적어도 두 드라마 속 역사에서 만큼은 뭔가를 배워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아직도 세상에는 정기준과 미실이 많이 보이니까.